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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록 도로록/소잉

소잉, 바느질 하려구요.

by 반짝반짝 작은새 2019.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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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잉이란

sewing, 재봉, 바느질을 일컫는 단어다.

잉? 요즘같은 시대에 바느질이라니? 하겠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 의류, 패션, 소품덕에
개성, 홈메이드, 감성이란 단어를 등에 엎고
오래전부터 꾸준히 떠오르고 있는 분야가 아닐까싶다.

난 비록 패션, 디자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지만 고작 천 조각으로 쓰임있는 무엇인가를 새로이 만들어낸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껴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바느질과의 인연

아주 어릴 적, 미미 인형 옷장을 가득 채워주겠노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서툰 바느질을 시작해
고등학생땐 가정 과목 과제로 만들어 간 방석을 재봉틀로 해왔다며 선생님께 오해 받을 정도로 꼼꼼하게 손바느질을 잘 하긴 했는데

손바느질은 작업 속도가 마냥 더디건만
결과물을 향한 내 마음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듯한 조급함으로 가득해서 나랑은 안 맞아!
제 풀에 지쳐 바느질과는 멀리했다. ^^; bye.

물론 재봉틀을 사용하면 쉽겠다 생각했었지만
재봉틀의 존재는 그닥 내게 다정하지 않았다.
"천 따위 다 씹어먹어버리겠다!! 으아아아!! 우적우적!!"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와 모양새가 공포스러워
묘한 두려움에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랬는데,
삼십여년 넘도록 그랬는데!
.
.
.

#. 스킬은 0렙. 장비부터 장착. 섣부른 판단

열무를 임신, 출산하고서
내 손으로 아기 옷을 만들어 입혀야겠다는, 갑작스럽게 솟구쳐오르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무턱대고 나름 고가의 재봉틀을 구매했다.(....)
물론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하에.

 

지금와서는 왜 얘를 샀을까 너무 후회하는, 그래도 애정하는 내 첫 미싱 1호



그때만해도 열무를 남편에게 맡기고 재봉틀을 배우러 갈 수 있을거라... 오만했지..오만했어.

상상초월 예민보스 열무는 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치 않았다. 재봉틀을 만져보는 것 조차.
설마 하겠지만 정말로.
20개월이 된 지금도 열무는 잘 못먹고 잘 못잔다.
탈수가 오고 배가 고파 손을 덜덜 떠는 애를 보고 있자면 어느 부모가 쉬이 내려놓을 수 있을까..... 흑

재봉틀은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하고
2년간 박스에서 녹이 슬어갔다....


#. 도저언! 육아와 취미생활 그 가운데.

그래도 시간이 약이란 말은 느리고도 정확한 답인가 보다.
열무는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남편이나 친정 동생들에게 30분, 1시간씩 맡길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육아에 치여 나를 잃어버렸다느니
되찾고 싶은 의욕도 없다느니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일하는 내 또래 여성들을 보면 부럽고,
열정과 에너지 넘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간질거렸다.

육아가 아닌 무언가에 에너지를 쏟고 싶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 속의 외침이 자꾸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열무와 놀이방을 다녀오다가 시에서 주관하는 시민능력개발 프로그램 전단지에서 홈패션 강좌가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아! 이거다!
미지근했던 행동력이 풀 가동되어 그날 바로 접수 해버렸다.

그 후 남편은 금쪽 같은 휴일에 열무 봐주느라 쉼 없는 매주매주를 보내고, 친정 식구들도 의도치 않게 희생하게 되었다.
매번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열무.
나 대신 고생하는 식구들.
미안함이 가득한데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다니고야 마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다.

 

공업용 미싱 맛을 알아버렸어



이렇게나 배우고 싶었던가?
내 전공과도 전혀 무관하고...
생각해 볼 수록 당황스럽네.

미약하지만 재봉에 대해 끊임없이 이어진 호기심 때문일까?
3년가까이 한 아이의 엄마로서만 살아오느라 놓쳐버린 내 시간을 향한 갈망일까?
분명 미풍으로 불어오던 바람인데, 폭풍이 휘몰아치듯 나를 몰아 움직이게 한다.

아무렴 어때,
덕분에 활기가 도는 걸.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지가 아니라
내일은 또 뭘 만들어보지? 내일은 무엇을 공부해볼까?
어떻게 하면 열무와의 하루 중에 짬을 낼 수 있을까 기대하고 계획하고 움직이게 한다.

취미생활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그 에너지로 덩달아 이렇게 블로그도 다시 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한 바느질이,
내 삶의 천 조각들을 어떻게 새로이 만들어나갈지.
부디 꾸준히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도전! 도저언!


모바일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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