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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사소한 이야기

물생활이 뭔가요?

by 반짝반짝 작은새 2021. 4. 30.

16년전 쯤, 아픈 푸들 한 마리 데려왔다가 하늘로 떠나보내면서 두번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놓고 새는 괜찮겠지(?)하며, 왕관앵무새 데려왔다가 제작년에 암컷 한마리를 떠나보내고... 
진짜 진짜 지인짜 두번다시는 또다른 생명체(?)를 들이지 않겠노라 했는데!
아이를 키우다보니 또 내가 판단이 흐려져서 미쳤..

작년에 첫째랑 같이 올챙이를 잡아와서 개구리로 키워 방생해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첫째가 뭘 자꾸 키우고 싶어했다. 이미 우리집엔 왕관앵무새 피코가 9년째 함께 살고 있지만 워낙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라 나 말고는 따르지 않으니 첫째가 쉽게 다가갈 수 없어 예외인가보다.

 

우리집 예민보스 1호 피코. 9년째 동거 중


강아지 안돼, 고양이 안돼, 햄스터 안돼, 병아리 안돼, 안돼 안돼 하다가 좀 안쓰럽고 짠한 마음에

물고기는 좀 돌보기 괜찮지 않을까.. 올챙이도 키워봤으니까~?
하던 때에 마침,

동생이 비파 한마리를 

아주 맡아줘도 좋고, 안되면 몇달만이라도 맡아달라고 보내왔다. 

어릴 때 아빠가 커다란 수족관에서 금붕어를 엄청 키우셨는데, 
그거 뭐, 하는 일이라곤 모이 챠르르 한번씩 뿌려주고 아주 가끔 대청소나 해주시는 것 같았기에 쉽게 생각하여 오케이.
여과기 소리가 좀 나는데 괜찮냐길래, 집에 끊이지 않는 아이 둘 울음소리와 피코 노래소리까지 이미 조용할 날 없는 집이니 오케이.
청소하는 것도 좀 번거로울 수 있다 하길래, 어항도 작고 가끔 하는 건데 뭐 어렵겠나 싶어 오케이.

 

어렵게 어렵게 어항을 받아 집에 왔는데,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너.. 강하게 컸구나.

 

첫 만남이 너도 어색하고 나도 어색하구나.

 

 

난 수족관에서 유유자적 아름답게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생각했는데 말이야.

비파는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애가 아니고, 벽에 딱.. 달라 붙어서 잘 움직이질 않는... 야행성 물고기란다.

 

기대했던 바와 달라 그런지 첫째도 시무룩. 

 

일단 어항을 꾸며보자! 그럼 또 다른 느낌일걸~ 달래며 어항 꾸미기 돌입했다.

미리 쿠팡에서 바닥재로 꾸밀 오색사랑, 인공수초, 장식물을 주문해두었지롱.

 

첫째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씻는다..고 쓰지만

장난치며 노느라.. 한참 걸림.

장식물이랑 수초도 씻어다가 물에 담가두기로.

 

 

 

그런데...

어항이 너무 너무 작다.^^; 물이 3리터 좀 더 들어가는 듯.

어항 사이즈 감안해서 샀는데도 실제로 꾸며보려니 너무 비좁아.

거기다가 인공수초들 날카롭고 딱딱하고, 무엇보다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났다. 

이거... 물고기한테 괜찮은건가? 

 

일단 꾸역꾸역 첫째랑 꾸며주었으나... 

 

다음날, 안되겠다 싶어 인공수초는 다 빼버리고, 장식물만 은신처로 쓰라고 냅뒀다.

곧장 가까운 대형마트 수족관 코너에 가서 살아있는 수초랑 구피 4마리, 구피 먹이를 사왔다.

구피 치어는 은신처가 필요하단 말을 어디서 주워들어가지고 부드러운 수초를 골랐는데 (벌써부터 치어 만날 생각...) 비싸다. 쬐에끔 샀는데 1만원이다.

심지어 자갈에는 수초를 심을 수 없단다.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으니

3-4개월 밖에 안갈 수도 있지만 화분에 심어서 주시겠다고 했다. 일단은 시도해보기로.

 

 

 

구피랑 수초 챙겨주시면서

물맞댐이 어쩌고 물잡이가 저쩌고 하셨었는데 예사로 흘려듣고, 

너네 살던 물이 익숙하단 말이겠지? 하며 집 어항물 반 버리고 거기다가 봉지째 다 부어버렸다...

그러고 물고기 밥만 잘 주면 되겠지 했는데....

 

3일째. 

머리가 빠지도록 공부하는 중이다.

물고기도 엄연히 생명인데, 왜 나는 쉽게 생각했을까.

물잡이, 물맞댐, 물깨짐, 박테리아제, 여과기, 기생충, 약욕, 소금욕... 신기하고 새로운 분야의 엄청난 정보들.

나의 무지함으로 구피들은 물론, 괜히 잘살고 있던 비파까지 용궁행 보내는 건 아닌가...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심란했다.

관련 까페에도 가입하고, 이리저리 검색해보고 알아보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이왕 키우는 거 잘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밤마다 도끼눈 뜨고 카페를 들락날락 하다 보니 물생활이란 단어가 보인다.

이렇게 물고기 키우는 걸 물생활이라 하는가보다. 

물생활이라, 어릴 때 낙동강 하류에서 물고기좀 낚긴 했는데

이런식으로 물고기들과 진지한 동거동락을 하게 될 줄이야.ㅎㅎ

 

아무튼, 첫날부터 무식하게 물잡이고 물맞댐이고 없이

냅다 부어진 구피들과... 비파들아.

조금만 버텨줘 ㅠㅠ 열심히 공부중이고, 열심히 택배가 오는 중이야... 죽지마...

앞으로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힘내서 물생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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