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하루하루 정신 없는 와중에도 자꾸 어항을 들여다 보게 된다.
전날밤에도 뚫어져라 물멍 해놓고서,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어항 앞에 앉는 것.
애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며 남편이 가벼운 핀잔을 준다.
어제 아침,
여과기 교체하고 환수도 해줘야지~하며 스포이드 딱 들고 준비 하는데
멈칫.
어? 이게 뭐야? 뭐 작은게 둥둥... 둥....둥!?!?
#. 구피 치어가 태어났어요.
으아아아아아아! 구피 새끼들이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말이야
아니 밤사이에 이렇게 뿅뿅뿅 태어나기 있어!?
귀엽다. 까만 눈 좀 봐.
세어보니 4마리다.
우리집에 오자마자 아픈 한 녀석이 있었는데 배마저 불러오더라니...
설마하며 살펴보자 그새 배가 제법 줄어들었다.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구피는 출산이 다가오면 ㄴ자로 배가 된다고 해서
출산은 아직 멀었으려나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너였구나.
새끼들을 보고 있을 수록, 지쳐있는 엄마 구피를 볼 수록 마음이 벅차오른다.
내 너의 힘듦을 왜 모르겠니. 아니, 모르긴 몰라도 어젯밤 고독한 시간을 보낸 건 알겠다...
부족한 여건 속에서도 힘들게 낳아줘서 고맙고 미안해...
항생제며 이것저것 주문 한 것들이 아직 도착하기 전에
어제 급한대로 소금욕을 해줬었는데
그 힘으로 출산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몰라서 막 추측함)
#. 구피 성어는 치어를 잡아 먹. 말잇못.
그런데!
실시간으로 수컷이 응가하는 모습을 포착했는데, 똥이 새카맣다.
아아니!!!
말로만 듣던... 까만 똥! 성어가 치어를 잡아먹으면 새카만 똥이 나온다더니.
너, 너, 너, 너어..!!!! 이 못난 애비야!!!
으으... 어쩔 수 없는 생태계지만 맴찢.
그래서 4마리 밖에 없었던 거니.
그래서 너네는 수초속에서 꼼짝도 안했구나.
이후부터 나는 더 집착스럽게 수초를 들여다보며
시도때도 없이 구피 치어들을 세기 시작했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네마리 휴 다 있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어 세마리... 아 네마리!
한마리, 두마리, ... 자기!! 새끼들이 없어졌어 또 잡아먹혔나봐!!! 아니다! 찾았다! 찾았어요.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네마리, 다섯마리.
응? 다섯마리?
분명... 분명 네마리였는데.
구피는 나눠서 낳는 다더니 아직 계속 낳고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구피가 낳은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이제야 발견한건가? 모르겠다.
처음엔 카페에서 조언을 얻어 치어들을 격리해야겠다 싶었지만,
이제서야 물생활 시작하는 초보 살림살이에 격리시설이 있을리 없고...
또 꾸준히 지켜보니 수초 속에 야무지게 숨는 애들은 나도 찾기 어렵게 잘 숨어있었다.
그래, 이것도 섭리이겠거니... 하고 냅두기로 했다.
#. 슬픈 이별
치어들을 낳고 난 뒤, 엄마 구피는 더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오늘 격리를 해주려고 막 준비하는데
갑자기 다른 암컷 구피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
어어.. 어어. 점점 움직임이 줄어 들고 몸이 자꾸 뒤집혔다.
그러다가 후다닥 힘을 내보지만 이내 또 뒤집혔다.
점점 배가 불러오던 암컷이었는데, 오늘 산란관 쪽이 유독 피가 맺힌 것 처럼 빨갛고 이상했다.
감이 왔다. 도와줘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지만 분명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배를 좀 어루만져주면 도움이 될까.
허나.. 첫째 둘째 모두 내게 매달려 정신이 하나도 없고..
초보자가 이 작고 작은 존재를 어떻게 만져줘야 할지 감도 안왔다.
어떡해.
아이들 칭얼대는 울음소리 속에서 점점 그의 생명력이 멀어져 가는게 느껴졌다.
아...
산란관이 막혔던 걸까. 산란하다 죽는 구피들도 있다고 하던데...
사람이나 이 작은 물고기나 생명의 탄생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고보니 치어가 6마리다. 분명 남편이랑 나랑 어젯밤에 5마리인 거 확인했었는데.
이렇게 되니 누가 낳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후 쯤, 아프던 암컷도 떠났다.
살아주느라 고생했어.
새 생명이 태어나 기뻐함도 잠시, 소중한 생명이 허망하게 떠나가니...
내가 이래서 애완동물 안 키우려고 했는데... ㅠㅠ
마음으로 울었다.
#. 다져지되 익숙해지진 않도록.
대형마트 수족관에서 데려올 때,
물잡이나 적응 문제로 몇일 안에 죽을 애들은 죽고 사는 애들은 산다고 하더니..
어찌 주황이들만 쏙 떠났니. 애초에 아픈 애들은 아니었을까 하고 은근슬쩍 남탓도 해보지만 소용없지.
자책감을 떨칠 수가 없다.
아휴 물생활 일주일만에 오만가지 일을 다 겪네.
성어 두마리를 어항에서 빼고보니 그 자리도 비는 자리라고, 어항이 널널 해졌다.
치어들이 전과 다르게 제법 활개를 치고 다닌다.
원래 이 어항의 주인이었던 비파도 구피들의 식사쟁탈 속에서 용케 잘 지내주고 있다.
어딨는지 찾기도 어렵고, 너무 움직임이 없어서 숨쉬는 거 맞지? 맞지? 하며 확인하기 급급.
아무튼 너도 고마워.
그래, 너네는 건강하게 살아야지.
도돌이표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게, 똑같은 슬픔은 겪지 않게
내가 보다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를... ...
그래서 말야, 내일 또 여러 택배들이 올 건데...남편, 너그러이 봐주겠지? 에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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