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리에서 먹이라는 말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나도 열무 키우기 전엔,
당연하지! 밥은! 밥상에서! 딱! 먹고! 딱! 치우는 거야!
라고 했지만.
에헤이...
#. 식탁이 감옥같은 아이
앞서 포스팅에도 적었지만, 먹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아이들은 모든 식습관 미션이 넘사벽이다.
밥상 앞에선 오로지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고정된 자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처음 이유식을 할 때부터 고정된 장소, 고정된 의자에 앉혀 먹이려 애썼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예민해서 못 먹는 거라 생각을 못했으니
꾸준히 먹이면 습관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열무의 식이 거부와 산만함은 갈 수록 더 심각해졌고
강제로 아이를 앉혀놓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됐다.
처음엔 다양한 숟가락을 몇개씩 올려놨고, 그 다음엔 작은 자동차들을 진열해줬으며,
나중엔 불빛이 번쩍이고 노래가 정신없이 흘러나오는 장난감들을 올렸다가
마침내 휴대폰 유튜브까지.
집은 물론, 식당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 전 이야기지만,
혹여나 식당에서 모여 외식하는 날엔
미디어를 보여주고 앉혀놓을래도 거부가 심한 바람에
한명씩 돌아가며 열무를 데리고 밖에 있었고 나머지 식구들만 이어서 밥을 먹었다.
이게 다같이 먹는 건지 마는 건지... 가족들에게 미안함..
예민한 열무를 한자리에 앉혀놓는 다는 것은,
더군다나 먹는 걸로 앉혀놓는다는 것은
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먹는 게 힘들고, 기꺼이 굶는 것을 택하는 아이에게,
먹을 생각이 없는 아이에게,
먹으라고 앉혀놓으니 그저 이 공간은 고문장소일 뿐이다.
하다하다 지쳐 우리는 "한자리"의 고집을 내려놓았다.
밥그릇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한입만 더~ 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디서 먹든 먹으면 되지, 라는 마음이 깔려있긴 했다.
소파, 티비 앞, 놀이방, 차안, 내 무릎, 뭐 어디든 말이다.
나도 그 꼴이 싫은데, 3자들은 오죽 싫을까.
한 마디씩 내게 퍼부었지만, 한 귀로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한 귀로 흘렸지만, 마냥 태연할 수 없는 심정. 속상했다.
#. 먹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을 때
열무가 조금씩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고, 말로 표현을 하고,
이전 포스팅과 같은 노력으로 드디어 먹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을 때
이제 한자리에서 먹을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남편에게 다짐하듯 당부하듯 말했다.
식탁에 앉혀서 먹이자.
처음엔 당연히 쉬울리가.
울고불고 난리다. 겨우 먹던 밥도 안 먹을 판국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당근을 식탁에 풀어놓았다. 예민한 아이에게 채찍은 별로 소용이 없다.
솜사탕, 초콜렛, 젤리, 사탕 등
조그마한 종지에 담아 식탁에 올려두고
맛있는 간식들부터 식탁에 앉아 먹도록 했다.
"열무야, 앞으로 뭘 먹을 때는 식탁에 앉아서 먹는거야."
고작 초콜렛 한개.
혹은 젤리 두개.
때론 사탕 한개.
그 양마저 얼마되지 않아 앉아있게 될 시간이 대단히 길지 않더라도
먹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땐 반드시 식탁에서 먹을 수 있도록.
#. 심플하고 편안하게.
열무처럼 여러 감각이 예민한 아이들은 식사 자리를 정할 때 여러가지를 유심히 살펴봐야한다.
아이가 특정 자극으로 인해 불편하면 일부러 다른 자극을 추구하여 잊으려 하거나 분산시키려고 애를 쓰므로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
정말로 음식에 집중하길 원한다면, 다른 감각들이 거슬리지 않게 해줘야 한다.
놀이감 같은 정신을 뺏는 것들 뿐만이 아니라 촉각, 후각, 시각, 청각 모든 통합감각들이 요소이고 원인일 수 있다.
좌식의 경우, 열무는 바닥에서 유독 몸이 늘어지고 뒹굴거리다 여기저기 손 뻗는 곳이 많아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질 않았다.`
아무리 제재를 가해도 그때 뿐, 이미 자기도 모르게 저기 어딘가에서 몸을 베베꼬고 딴짓을 하고 있다.
그래서 좌식식탁에서 식사할 땐, 꼭 낮은 의자를 준비해서 몸이 최대한 적은 표면으로 자극을 받게 했고
아이가 앉았을 때, 시야에 너무 많은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 자리를 선정했다.
자꾸 퍼질러 있게 되는 좌식보다는 자세를 잡아주는 입식식탁에서 더 음식에 집중하는 듯 했는데, 그만큼 더 힘들어했다.
여러 훈련(?)을 통해 무언가를 먹을 때 식탁에 앉아야 하는 것은 점점 익숙해져갔지만
먹을 의지가 언제나 넘쳐흐르도록 충만한 건 아니었고 지속성이 짧았기에 열무의 인내심은 금방 바닥이 났다.
발을 쉼없이 구르거나 테이블을 쓸데없이 자꾸 만지고 긁거나 식탁상판을 두들기거나 하는 등의 산만한 행동을 보이고
피부에 와닿는 식탁의 질감, 온도에 예민했으며
의자 모양, 쿠션감, 등뒤에 걸리적 거리는게 있는가도 신경써했다.
오래 앉아있기 힘든 열무는 밥먹는 와중에 수십번 의자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왔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가급적 식탁에서 대화를 끊임없이 건네어 이야기에 집중 하도록 유도했다.
대화의 유혹이 제법 성공적일 때 열무는 이야기에 신경을 몰두하였고,
이는 일일이 표현하지 못하는 식사자리의 불편함과 지루함을 억누르며 조금씩 익숙해지게 했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인지, 마침 시간이 흘러주는 덕분인지
밥 먹자~ 하면 자연스레 식탁의자에 올라 앉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만3년간 먹는 것과의 사투를 벌이던 아이에겐 아주 대단한 변화였다.
열무가 간식준비하는 날 보고는 지레 먼저 식탁의 짐들을 내던지고 있을때면 우습기도 하다.
다만 식탁에서 오래 머무르기는 여전히 힘이 든다. 아직 그 정도로 매력있는 반찬을 많이 못 찾았다.
#. 당장은 약이고 훗날은 독이 될 미디어의 힘.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 여기며, 특히 식사할 때 텔레비전 보는 걸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는 나지만ㅡ
아이가 최대한 음식에 집중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함에도ㅡ
어쩔 수 없이 미디어를 택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둘째가 저도 배고프다고 오열을 하거나, 둘째에게서 심상치않은 응가냄새가 나거나, 하다못해 내가 급히 화장실을 가야하거나.
뭐 등등 여러 핑계 될 만한 상황들에 놓일 때
나는 열무를 혼자 식탁에 앉혀둬야 하고, 열무를 붙들어 줄 이는 유튜브 뿐이다...
유튜브 보느라고 넋이 빠져 더 안 먹을 때도 있고, 그저 엉덩이 붙이고 있게 할 뿐일 때도 있지만
적어도 먹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땐, 미디어를 보면서도 온전히 제 손으로 밥과 반찬을 다 먹었을 때도 있다. 이건 정말 혁신인 일이다. 오히려 유튜브가 식사를 도왔다고 볼 수 있을 정도.
아마도 열무가 식사에 오롯이 집중하기엔 아직 어렵기에,
자꾸 분산되는 감각으로 힘든 열무를, 유튜브를 봄으로써 더 큰 자극으로 압도하여 잊게 해주는 거겠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현실에 어느정도 타협하지 않으면... 나 죽소.
알면서도 들이킨,
달콤함을 위장한 쓰디쓴 마약.
처음에는 열무를 식탁 한자리에 앉혀 밥을 먹는 게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미디어든 뭐든 좋다 합리화하며 허용했는데, 최근 들어 식탁에만 앉으면 당연하게 "유튜브는요?" 묻고, 유튜브 없으면 안된다고 울고불고 하는 일까지도 생겼다.
감수하기로 했으나 미디어에 대한 떼쓰기를 실제로 겪게되니 내가 무슨 짓을 한건가, 심히 불편하고 싫다.
그렇다해도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다.
무려 열무가 혼자 숟가락질 해서 밥 먹기 시작했는 걸?
(열무는 대소근육 발달이 빨랐음에도 세돌이 넘도록 숟가락질 포크질을 잘 못했다. 제 스스로 떠먹을 의지도, 떠먹을 일도 잘 없으니.)
다만 이제 점차 줄여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는 중이다.
절반시청이라 이름붙여 식사시간 중 시청 시간을 반으로 줄이는 노력을 하고있다.
미디어 없이 엄마나 아빠랑 이야기 하며 식사의 절반정도를 하고나면 나머지 식사할 동안 유튜브를 틀어준다.
어린 아이 마음에 어쨌든 당장 못 본다하니 칭얼거리며 떼를 쓰는 듯 하다가도
어느새 힘든 마음 꾹꾹 눌러담으며 인내하며 제법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아예 유튜브 없이 먹는 날도 있다.
반대로 유튜브 없이는 아예 불가능할 때도 있고...
쩝 내 뜻대로 될리가...
그래도 한 자리에서 먹이기 위한 엄마의 노력은 계속 된다!
식탁 위에 식사와 관련된 것 이외의 다른 무언가는 올라오지 않게될거야.
더이상 장난감도 아이패드도 없이,
오손도손 우리가족 정답게 식사하는 그 날이 언젠가 올 거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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