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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이야기/예민한 아이 예민한 엄마

안 먹는 아이 : 편식을 미워하지 말자. 예민한 아이의 미각 이해하기 1편

by 반짝반짝 작은새 2021. 5. 6.

#.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옛날에는 그저 배곪지 않는 게 중요했으니 뭘 먹든 배불리 잘 먹으면 되었지만

먹을 것들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요즘엔

잘 먹는 것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더 큰 관심사다.

 

출처 : 삼시세끼가 중요한 동생님 사진첩

 

 

물론 예나 지금이나 좋은 걸 먹이고픈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만

요즘에 더더욱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강해졌달까.

아마 우리세대, 혹은 우리 앞세대들이 갑자기 풍족해진 먹을거리에 휩싸여 거리낌없이 먹어왔던 것들이

이제와 알고보니 성인병을 유발한다,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 어쩐다 하니,

우리의 자식들에게는 양보다 질을 강조하게 되고

가공되고 냉동된 식품, 혹은 정크푸드 같은 것들보다 신선하고 자연에 가까운 건강한 식품을 먹이고자 식습관에 애를 쓰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의 편식은 부모에게 참으로 골칫거리다.

분명 나도 안 먹는게 있고, 싫어하는 게 있는데도

이제 막 먹기 시작하고 자라나는 내 아이들만큼은 골고루 건강하게 잘 먹길 바라며,

편식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

이유식 때부터 개월수가 바뀔 때마다 먹일 수 있는 음식을 체크하여 다양한 식감과 맛을 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들인다.

 

심지어 임신 중에 골고루 먹어야 태어난 아이가 골고루 먹는다는 그런 말도 있어, 임신부터 아이의 편식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기도 한다.

카더라의 진위여부는 모르겠다.

다만 열무 임신 때 입덧을 정말 심하게 하여 막달까지 제대로 먹은 게 없고 그 와중에 랍스터랑 회만 겨우 먹었는데, 열무가 어릴 때부터 유일하게 먹어준 게 생선이랑 게살이란 건 참말 우연의 일치인가 싶기도 하다.ㅎㅎ

 

 

#. 편식은 당연한 것이지만 방관할 것은 아니다.

 

먹이는 것에 집착하는 나를 보며 우리 친정 엄마 하시는 말씀이,

사람의 입맛은 계속 변하는 것이니 괜히 지금 편식하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 어련히 알아서 잘 먹을 것이고, 못 먹으면 또 어떤들. 굶기야 하겠냐. 요즘 세상에 먹을 것 천지니 걱정할 필요없다, 하신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지나친 편식은 식품의 선택 범위를 좁게 하고,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영양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에 분명 간과할 수 만은 없는 문제며, 

나이가 들며 서서히 입맛이 변하는 것 이외에도 어떠한 계기를 통해 편식문제를 해결 할 수도 있기에 편식에 대해 부모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어떻게든 소고기를 먹여보려고 온갖 시도 하던 중에 낙찰!

 

옛날에, 친정 엄마는 가지를 항상 나물로만 요리하셨는데

그 물컹거리고 축축하고 흐느적 거리는게 너무 싫어서 우리 자매들은 아무도 먹지 않았고, 항상 부모님만 드셨다.

그러던 어느날 이모가 우리집에 와서 가지전을 해줬는데

물컹거리고 축축한 느낌이 싹 없어지고 고소하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우니 

그 날 가지전은 제일 인기 많은 반찬이었고, 이후부터 우리집에 가지 못 먹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나는 당근과 오이의 특유한 향 때문에 날것을 무척 싫어했는데

가족들과 간 고깃집에서 쌈장이랑 스틱채소를 내어주는게 아닌가.

허기는 지고, 쌈장은 좋아했던지라 용기내어 찍어먹어봤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그 후부터 수시로 생오이와 생당근을 먹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쌈장 없이도 우적우적 잘 먹었고,

더불어 양파도 이러한 방식으로 나의 최애 식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처럼 나는 몇몇 채소들에 대한 편식을 우연한 기회로 바로잡게 되어 성장기때 채소가 식단에 항상 자리하였고, 더불어 패스트푸드, 정크푸드를 되려 싫어하며 건강한 집밥을 선호했다. 

 

반대로 남편은 나이 서른에 채소라하면 절레절레하는 상태로 내게 장가를 왔다.

삼십년간 제대로 채소편식을 하고 살아 온 남편의 식습관이 좋을리 없고, 나쁜 식습관은 남편의 건강을 저해했다. 정크푸드 중독, 비만, 내장지방, 고혈압 등등...

진작에 이러한 편식들을 고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아이의 편식 문제에 대해 방관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억지로 아이의 입에 그토록 싫어하는 것들을 구겨넣고

막무가내로 참아라 버텨라 삼켜라 하는 방식이 옳단 얘기가 아니다.

 

아이가 왜 편식하는지, 보다 더 깊은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 푸드 네오포비아(food neophobia)

 

열무가 살짝 정신팔린 틈을 타, 부드럽다고 생각 되는 소고기 안심구이를 입속에 쏙 넣었는데 웩 뱉어낸다. 것도 모자라 이미 잘 먹었던 밥까지 속에서 다 끄집어 올려 토를 한다.

 

콩나물 몇 줄기 반찬그릇에 담았을 뿐인데 먹어보기도 전에 입을 틀어막고 통곡을 한다.

 

맛있는 빵을 주며, 이건 정말 맛있는 거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입술에 닿는 것도 몸에 닿는 것도 싫어한다.

 

밥도 먹고 생선도 먹길래, 밥 위에 생선을 얹어서 줬는데 가차없이 뱉어낸다. 음식이 남아있지도 않은 혓바닥을 긁어내며 엉엉 울기 시작한다.

 

"먹어봐! 아니, 일단 좀 먹어봐! 먹어보지도 않고 싫다는 거야 왜!"

"왜 뱉어! 뱉으려고 하다가 토하잖아!?"

"이거 맛있는거라니까 왜 엄마 말을 못 믿어! 일단 먹어보라구!"

 

처음엔 열무가 예민하다는 것을 다양한 감각의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미각, 식감은 별개의 문제라 생각했다.

따라서 편식하는 것을 감각의 문제가 아닌

기호, 감정, 기분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열무의 식이거부에 자꾸 언성이 높아지고 짜증이 났다.

당췌 이런 아이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너무 답답했다.

 

입 앙. 안 먹어요 안 먹어요.

 

 

한 날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울적하여 잠도 오지 않아

식탁에 멍하니 앉아 보건소에서 나누어준 책자를 뒤적거렸다.

우리 열무한테는 아무것도 해당 안되는 듯한 이론들, 누군 몰라서 못 먹이줄 아나. 하며 궁시렁대다가 멈추었다.

 

그 곳에 열무 이야기가 있었다.

 

푸드 네오포비아. 

그렇다. 열무는 푸드 네오포비아다.

전문가가 내려준 진단은 아니고, 내가 열무를 관찰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푸드 네오포비아란,

낯선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데,

단순히 새로운 음식을 꺼리는 정도가 아니라 공포심에 의한 강박현상, 신체반응 까지 일어나는 정도를 일컫는 것이다.

만2세~5세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머리가 땡 하고 울렸다.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의 실타래가 물에 녹아 풀어지 듯 했다.

이상하지. 현실은 아무런 변화없이 문제들의 연속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제대로 정의하는 순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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