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민한 아이의 구강 촉각방어
푸드 네오포비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을 무렵
마침, 감각통합장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는데
열무의 먹는 문제에 대해 아주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번역이 부드럽지 못하지만,
감각처리장애 아동의 섭식에 대한 내용 일부를 요약하여 옮겨와본다.
- 입안이 예민해서 특정 음식의 질감과 농도를 참을 수 없기도 하는데 이러한 입안의 촉각과민성을 구강 촉각방어라고 부른다.
- 또한, 음식의 모양, 냄새, 혹은 싫어하는 맛이거나,
- 근육으로부터 오는 감각정보를 비효율적으로 처리하여 입안에 음식을 넣는데 문제가 있다.
- 자기의 공간적 위치에 대한 정보처리가 안되어 의자에 앉아있는 것에만 주의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먹는 것에 주의를 집중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 마지막으로 빨기, 삼키기, 호흡하기의 협응과 같은 기본적인 감각-운동 패턴을 아직 발달하지 못한 경우, 구강-운동기술이 좋지않아서
씹고, 먹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음식을 내려보내고, 소화시키는 등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Carol Stock Kranowitz, 남용현 이미경,『우리 아이 왜 이럴까?』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2020), pp. 48-49.
또한 구강방어로 검색해보면
여러 자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그 중
무료로 오픈되는,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논문하나를 링크해 둔다.
구강방어가 있는 섭식장애아동의 감각처리 평가와 중재방법에 대한 고찰 (dysphagia.co.kr)
해당 페이지에서 PDF 다운로드 버튼을 눌러 전문을 확인 할 수 있다.
아래는 초록의 일부.
섭식장애아동은 일반아동보다 식사도구, 식사환경에 민감하고, 음식의 질감, 맛, 냄새 등에 민감하여 새로운 음식 먹기를 힘들어한다. 특히, 구강과 관련된 활동, 특정 질감의 음식에 대해 회피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 구강방어라고 하는데, 구강방어가 있는 섭식장애아동은 다른 어떠한 중재접근법보다 감각처리중재 방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한다.
ㅡ중략ㅡ
구강방어가 있는 섭식장애아동의 경우 분유를 빨지 않으려하고, 특정 음식질감을 거부하거나, 입주변이나 입안에 음식이나 물건이 놓이는 것을 피하려한다. 그리고 구역, 구토, 음식 물고 있기, 음식 뱉기, 그릇을 던지는 것과 같은 문제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섭식발달과정인 모유나 분유에서 이유식으로, 이유식에서 고형식으로의 이행을 어렵게 만든다.
류성운, “구강방어가 있는 섭식장애아동의 감각처리 평가와 중재방법에 대한 고찰", 『Swallowing Rehabilitation』 제2권 1호 (대한연하재활학회, 2019), p. 47-55.
감각방어, 구강방어, 구강촉각방어.
이건 완전히 열무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게 아닌가!
열무에겐 있어서 편식은 어쩔 수 없는 신체적, 심리적 반응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세돌이 넘도록 컵으로 물을 잘 못 마신다거나,
칫솔질을 심각하게 거부하는 것들도
이런 맥락에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유있는 편식
예민한 우리 아이, 왜 그토록 먹는 것이 힘들었는지
지긋지긋한 편식이 왜 그리 심했는지
한결 이해가 된다.
대표적으로 혼합된 음식을 먹지 않는 것.
볶음밥은 물론이고, 밥 위에 반찬을 얹어줘도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싫어하는 음식 몰래 섞어놓은 것을 귀신같이 찾아내며 거부하는 건 둘째치고
잘 먹는 음식(밥+생선) 2개를 합쳐줘도 거부하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었는데 말야.
아마도, 여러 음식이 섞여서 들어오면 제대로 구강방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2개 이상의 음식이 섞이면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입 안에 들어온 음식의 양이 조금이라도 많아지면 뱉어내던 것,
혹은 너무 오래 물고 있던 것,
다른 아이들은 환장하는 김을 싫어하는 것,
고기를 안 먹는 것,
등등 이 모든 게
괘씸하고 얄미운 편식이 아니라
이해해주고, 배려해줘야 하는 감각적인 문제였다니.
#. 작은 변화지만 너무도 큰 변화.
나는 더이상 열무 입에 후다닥 음식을 넣고 보거나,
몰래 재료를 넣어 섞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이의 두려움, 공포심을 더 극대화 할 이유가 없었다.
안심시키자.
항상 열무에게 음식 준비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건 열무가 좋아하는 생선이고, 이건 밥이야.
잘 봐바. 숟가락에 밥 조금 뜨고, 이 위에 맛있는 생선을 조금 얹어볼게.
한번 먹어볼래?"
혹여 가차없이 싫다고 하면 쿨하고 자상하게,
"그래~ 이렇게 먹을 수도 있지만, 다음에 먹어보면 돼. 오늘은 따로따로 먹자." 하고 넘어갔다.
이렇게 몇 번 반복되던 어느날 갑자기 생선을 얹은 밥을 받아먹었다. 오! 세상에!
이번엔 자신감을 가지고, 볶음밥을 시도해보았다.
일단 내 스타일의, 엄마욕심이 들어간 볶음밥은 포기한다. 낯선 재료들은 안녕.
열무에게 익숙하고, 열무가 좋아하는 반찬, 하지만 밥과 식감이 크게 다르지 않는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프레스햄!
설마 햄, 소세지 싫어하는 애가 세상에 어딨겠어, 하며 야심차게 내놨다가 매번 퇴짜 맞았는데
세돌이 넘고서야 프레스햄을 조금씩 먹어주길래
이때다 싶어 잘게 잘라 밥이랑 비벼서 햄볶음밥이라 하며 줘봤다.
처음엔 따로따로 외치더니, 어느새 엄마 햄볶음밥 주세요! 하는게 아닌가!?
장족의 발전이다.
이 흐름을 타 게살크래미를 잘게 잘라 섞어 계란오믈렛을 해주고,
감자와 새우를 섞어 새우전을 해주고,
무언가를 섞어 주는 것에 희망이 생겼다.
나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시도했고, 열무도 아주 천천히 천천히 변화하는 중이다.
또한, 아이의 미각을 존중한 이후,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음식에 대한 공포증이 호기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무의 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줬더니
점점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제는 우리가 먹는 콩나물에 관심을 보였다.
냄새도 맡게 해줬더니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선뜻 입에 넣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열무가 싫어할 만한 질긴 콩나물꼬리와, 머리를 떼고
묻어있는 깨소금도 탈탈 털어 성심성의껏 유혹했더니 한 입 용기내어 먹어본다.
역시 뱉으려나 준비하고 있는데,
음~ 하는 감탄사와 함께 두번이나 리필해서 콩나물만 먹었다!!!
무조건 입을 틀어막고, 미친듯이 몸부림을 치고, 울고 시작했던 식사시간이었는데.
엄마가 먹는 것, 아빠가 먹는 것에 관심을 갖고 물어보니
식탁은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엄마 그건 뭐야?"
"이건 오무라이스야. 냄새 한번 맡아볼래?"
"음~맛있는 냄새가 나!"
"응! 정말 맛있어. 한 숟가락 먹어볼래?"
"아니^^;"
"그래~ 나중에 열무도 먹을 수 있게 되면 꼭 먹어보자!"
"응! 열무! 나중에 오무라이스도 먹고, 김치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다 먹을거야!"
비록 인생 만3년차 허세가 가득찬 말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음식앞에서 자신감 넘치는 열무가 참으로 보기 좋고 뿌듯했다.
물론 여전히, 식탁은 종종 전쟁터가 되곤 한다.
아직도 열무가 먹을 줄 아는 반찬은 한 손에 꼽는다.
나도 남편도 언제나 이성적일 수만은 없고,
아이의 변덕도 곡예를 넘듯 출렁이지만.
그래도 작은 변화들이 그동안 나의 고되고 우울했던 육아를
조금이나마 보람되고 기쁜 시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아이를 이해한다는 것, 참 어렵지만
아이의 세상 전부인 부모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 주었을 때
비로소 아이는 용기와 자신감 가득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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