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의 이야기/예민한 아이 예민한 엄마

안 먹는 아이 : 먹고 싶은 마음 키우기

by 반짝반짝 작은새 2021. 5. 1.

#. 모든 식습관 교육은, 먹고자 하는 의지라도 있어야.

 

만 3년간 열무 먹는 것에 매달리고 고민하고 씨름하다 깨달은 것은

내가 뭔 짓을 하든간에 애가 먹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당연한 말인데

이 당연한 걸 뒷전으로 하고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what 뭘 먹일지, how 어떻게 먹일지만 연구하고 있었다. 나도 참.

얘네들한테는 why가 중요한 건데.

 

안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 배고픔 알게 하기

 

먹고자 하는 의지란 어떤 것인가. 

식탐도 그 중 하나겠지만, 그보다 더 본능적인 것. 바로 배고픔. 생존.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아이를 굶기라고 한다.

배고파지면 뭐라도 먹을테니까. 

 

어린이집 다니고부터 집에와서 밥을 게눈 감추듯이 먹더라, 알고봤더니 어린이집에서 굶겼다던가

반찬투정해서 하루종일 굶겼더니 저녁에 김치 하나가지고 밥 싹 비워버렸다던가

밥을 다 안 먹었어도 일정시간 후면 무조건 치워버렸더니 애가 그 순간이 아니면 못 먹을 알게되어서 집중해서 잘 먹었다던가.

 

맞는 말이다. 어느 부분 효과가 있기도 하겠지.

근데 이것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극단적인 이런 방법 마저 안 되는 애한텐 안 되는 게다. 

굶기고 굶기다가 결국 병원행해서 수액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열무같은 경우 배고플 땐 물을 마시는 게 최선이고, 그 이상의 타협은 없었다.

하루에 한 끼는 진작에 일상이었으며 그 마저도 제대로 안 먹은 채 잠들기 일쑤였다.

 

배고파서 힘든데, 배고픔을 해결 할 수가 없어요.

 

 

배고픔이 그저 통증이고, 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을 의지라곤 1도 없는 아이.

아마 내가 더 굶겼더라면 진짜 병원행 했을 수도.

 

그래서 나는 굶기는 게 아니라 더 먹여서 배고픔을 알게 하는 노선을 택했다.

배고픔을 알게 하기 위해 더 먹이다니?

아이러니 할 수도 있다. 

더 풀어서 말하자면,

충분한 배부름을 느끼게 해서 상대적 배고픔을 알게 해보자는 것.

 

"아니, 안 먹는 아이를 어떻게 배부르게 해."

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래. 그래서 결국 문제의 처음으로 돌아온다.

어찌되었든, 뭐든, 먹여야 하는 것이다.

 

 

#. 일단은 지푸라기부터 잡고 본다.

 

나는 밥을 사랑한다. 진짜 밥! 흰 쌀밥 말이다.

다른 거 다 필요없고 밥만 꼭꼭 씹어먹어도 그 달고 찰진 밥알들이 맛있고 행복하다. 

제일 득되는 것 없는 식품이 흰 쌀밥이라지만 나는 밥심을 믿는다. 

다른 건 다 몰라도 밥! 밥하나 만큼은 끼니때마다 먹는 거란 걸 알려주고 말리라.

쌀이란 게, 무르게 질게 고슬하게 등등 식감을 조절하기도 쉽고

특별히 맛이 강한 것도 아니니까

예민한 아이가 무난하게 먹기 좋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배부름을 느끼기에도 쌀밥 만한 게 없지 않은가.

 

이러한 나의 집념으로 "밥만 먹일 수 있다면." 제목의 기상천외한 식단이 시작되었다.

단, 아이가 흔퀘히 먹어야 한다는 전제조건 필수.

열무가 먹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든 먹고 싶어 한다면 기꺼이 주되, 쌀밥도 같이 먹는 딜을 했다.

 

쌀밥과 수미 감자칩.

쌀밥과 맥도날드 감자튀김.

쌀밥과 투게더.

쌀밥과 꼬깔콘.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이 글을 보면, 이 엄마 미친 거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뭐, 미치고도 남지. 난 이미 이성을 잃고 한바퀴 돌아왔다구요.

나의 고충을 누가 알아주랴. 

 

열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일단 권하고 봤다.

아이들용으로 판매되는 간식, 성분 및 재료에 신경써서 몸에 덜 나쁠 것 같은 간식들은 무참히 실패했고,

하다못해 불량식품이니 정크푸드니 다 손을 뻗어봤지만

푸드 네오포비아인 열무는 섣불리 입에 대지 않았기에...

저 네가지 음식(?)을 찾기까지의 여정도 쉽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내가 무엇이든 일단 권하고 볼 수 있었던 건

열무가 군것질 마저도 딱히 선호하지 않아서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작 먹을 수 있는 저 네가지를 실컷 준다 한들 많이 먹지도 않았고

눈에 안 보이면 찾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밥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 밥으로 배부름을 느끼게 하기 위해

참 별... 짓을 다했네.

다행히 열무가 쌀밥을 거부하는 정도가 다른 음식에 비해 좀 낮은 편이고,

본인도 그동안 워낙 못 먹는 게 많았다보니, 입에서 받아주는데 마침 맛도 있다면 충분히 밥이랑 딜이 되었다.

 

혹시 이 글을 보며 아이를 심각히 걱정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사실 저렇게 먹인 것도 하루에 한끼, 일주일에 두세번, 그 기간도 길지 않았다..

애당초 뭐 잘 먹어야 말이지. 

게다가 생각보다 빠르게 나의 목적을 이루었달까.

 

쩝 초코아이스크림은 제 스타일이 아니네요. 녹여서 장난치기^^

 

 

#. 배고프면 네가 좋아하는 걸 먹어보자.

 

뭘 먹는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배부름을 알게 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먹이자, 대신 밥과 함께.

ㅡ라는 생각을 실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무가 무언가를 먹고자 하는 행동이 점차 두드러졌다.

배부르게 끼니를 때운 경험이 많아진 열무는, 

긴 시간의 공복에 배고픔을 느끼는 듯 했다.

 

그래! 이제는 다음 단계다!

 

아침과 저녁만큼은 꼭 챙겨서 먹이지만 점심은 굳이 챙기지 않았다.

대신 시계를 보다가 점심 때가 좀 지나면 열무에게 항상 물어보았다.

 

열무야, 배 안 고프니? 혹시 배고프면 네가 좋아하는 감자튀김 먹을까?

열무야, 배고프지 않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열무야, 배고프면 과자 먹자. 꼬깔콘보다 더 맛있는 과자가 있어.

열무야, 배고프면 말해~ 열무가 좋아하는 거 먹자.

 

배고픈 애 군것질로 때우는 거 하지말아야 할 일이지만.

배고프면 물이 아닌 무언가를 먹어야 함을 알려주고 싶었기에.

그리고 열무의 배고픔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가 되기에.

 

쿠크다스!! 먹을만 해요!!

 

 

#. 배가 고파요. 먹고 싶어요.

 

어느 순간부터 열무는, 

점심 때가 지나 슬슬 배가 고파질 때쯤 식탁을 기웃거리며 허기를 달랠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 저거 뭐에요? 열무 먹을 수 있어요?"

"열무 배고파?"

"네, 열무 배고파요."

 

점점 열무는 배고픔을 표현하고, 먹는 것들을 궁금해 했다.

미미하지만 먹는 것에 긍정적으로 변해가니, 열무가 좋아하는 음식 리스트도 하나씩 늘어났다.

물론 이러한 반응은 비단 과자같이 흥미로운 것들로 유혹하는 단편적인 방법으로만 빚어진 결과는 아니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흥미를 돋구기 위한 노력도 부단히 포함되었다.

이는 따로 포스팅 해야 할 듯 하다.

 

나도 점차 과자 부스러기 보다는 좀 더 그럴싸하게 끼니를 때울만한 것들로 제안하였다.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 바나나, 떡 같이 간단한 걸로 간식처럼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기도 했다. 

 

이거... 내가 먹을 수 있을까요? 열무 지금 용기가 필요해요.

 

"열무 배가 많이 고픈가보네. 점심을 안 먹어서 그래.

과자 먹기전에 새우전이랑 밥 줄테니까, 밥 먹는 건 어때? 새우전 정말 맛있어!"

 

"네! 좋아요! 새우전 하고 밥 먹을거예요! 먹고싶어요!"

 

그리고 정말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

"맛있어요. 더 주세요."

 

물론 여전히 못 먹는 것 투성이고, 안 먹는 것 투성이.

심지어 먹고자 하는 의지도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참 하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이가 먹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나는 희망을 마주하였다.

변할 수 있구나. 

시간이 나를 도울 것이고, 나는 그 시간을 더 빠르게 당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먹고 싶어요."

"맛있어요."

"더 주세요."

 

이 말이 얼마나 듣기 어려웠는지, 얼마나 고마운지.

지금도 글을 쓰면서 눈물이 터질 것 같다.

이 마음을, 정말 누가 알아줄까.

 

 

...to be continued

반응형

댓글